2009.12.30 01:32

지식PD 고우성 자기 소개서

여기서 자기소개서를 쓰려니 약간은 어색하지만, 요즘 같은 "연결의 시대"에는 “Know-how” 가 아니라 상호신뢰 기반의 "Know-who"가 중요하므로, 우선 제 정체(?)를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밝혀야 저와 연결된 분들과 상호 이해와 협업이 가능할 것 같아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공대교수셨던 아버님의 영향으로 고등학교 이과 > 대학 전기공학과 > 대학원 Computer Science(인공지능 전공) 를 다녔는데, 사실 고등학교 문과 > 경영대 또는 산업공학과> MBA를 막연히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교육은 좋은 대학 나와서 미국유학 갔다 와서 교수나 대기업연구원 되는 것이 하나의 모범답안이었고, 저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갔습니다. 지금 제가 다시 20대로 간다면,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싶고, 광고회사에서 광고카피 만드는 터프한 경험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래도 한가지 긍정적면은 서당개 삼 년이라고 기술의 개념과 방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현재 세상의 모든 혁신 뒤에 내재돼있는 기술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학원 미국유학 중 엄청 방황(여자,마약만 제외하고 다^^)을 했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라기보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체면이나 주위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데 저는 그냥 남들이 만든 모범답안 인생을 살아온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제가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지를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란 책을 읽고, 그런,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삶이 참 멋있게 보였으며 그런 저자의 직업은 "비즈니스 맨"이었습니다. 주위 분들에게 "비즈니스 맨"이 되려면 무엇을 배워야 됩니까 물으니 많은 분들이 세일즈 & 마케팅을 꼭 알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귀국하여 대기업 잡 인터뷰를 볼 때 고졸 임금/직책도 다 좋으니 팬티장사라도 영업부서에 보내달라고 요청하였고, 마침 대우통신에서 시스템사업부서로 발령을 내주어 29세때 처음으로 직장생활 그것도 영업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금융사업부 소속이었고, 제 상관은 염 권준 과장님(지금은 “아이찜”이라는 백팩 및 가방 제조사 대표)이었는데 사회 및 영업초년생인 저에게 영업의 멘토가 돼주셨던 분으로, 같이 고객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보는 그 분의 말투 및 행동이 저에겐 어떠한 MBA책보다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우연히 골프장전산화를 하려고 할 때 저에게 3개월의 시한과 권한을 주며 집중해서 클로징 해보라고 기회를 주었고 저는 결국 제 생애 첫 번째 계약을 사업기획초기부터 클로징까지 전 단계를 제가 다 해보면 성공시켰습니다. 만약 제가 금융사업부를 맡는 사람이라면 매출액도 작고 금융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를 신입영업에게 권한을 주고 시켰을까 하면 의문입니다. 어쨌든 첫 번째 사회의 멘토로 인해 저는 새로운 시장개척에 대한 자신감과 방법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에서 몇 년 일하다 보니 일은 재미있었지만 연공서열의 경직된 조직의 형태가 답답하게 느껴졌고 무언가 유연한 조직의 형태 속에서 분야별 프로와 같이 일하고 싶었습니다. 95년에는 벤처라는 개념이 없었고, 당시에는 외국계회사의 지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빨리 원하는 조직의 형태를 가지고 일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Database솔루션 중에서 가장 후발주자인 Sybase Korea로 갔으며, 이유는 절대1위인 Oracle Korea를 제가 맡은 분야에서 꺾으면 시장에서 저에 대한 신뢰가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지사장의 기회도 빨리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Sybase Korea에서 의료정보화 분야를 맡아서 2년도 안돼서 Oracle을 꺾고 의료정보화에서 Sybase의 입지를 굳건히 하였고, 결국 작은 외국계회사로부터 지사장자리가 오퍼가 왔으나  이미 97년에 저의 마음은 “벤처”라는 개념에 빠져있었습니다.

제가 이끌렸던 “벤처기업”은 신기술 개발보다는 “분야별 프로가 같이 자발적으로 일하며 결과를 1/n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한 만큼 나눠 갖는 조직의 형태”이고, 이런 조직이 21세기에는 대세가 될 것이라 느껴져, 98년도에 ㈜디비코(www.dvico.co.kr )란 영상전문 벤처기업을 파트너들과 함께 창업하였고 쭉 경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97 10, 12명의 대기업연구소의 쟁쟁한 인재들을 외인구단 만들듯이 열정과 새로운 도전으로 공감대를 이끌며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곧 IMF가 터지고 회사에 투자를 약속했던 투자자는 떠나고 달랑 7 백만 원과 12명의 동료 그리고 98년 초의 살벌한 IMF위기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믿고 있지만 “사회는 진실이 통한다”란 인생관이 있는데, 여기서 “진실”이라 함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100% 확신하는 상태(사랑이 비슷한 상태!)를 말하며 이럴 때 사회에서 만난 초면의 사람(특히 인생경험을 많이 한 고수분들)은 지금까지 꼭 제 진심을 이해해 주셨고 도와주셨습니다. 98 2월부터 상장회사 회장님들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그 중 30분과 전화통화를 하였고 10분이 직접 사업설명을 들어주셨습니다. 결국 원익그룹(http://www1.wonik.com)의 이용한회장님께서 두 번째 만남에서 투자를 해주시기로 하셔서 ㈜디비코는 탄생했고 지금도 영상전문기업(TVIX DVIX player)으로 수출위주의 200억매출을 하는 벤처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이용한 회장님은 경영과 세상사는 가치관의 멘토이며 지금도 감히 제 인생의 주군이라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20007월경에 ㈜디비코에서 SmartTV PVR을 세계에서 SONY다음으로 두 번째 만들었습니다. Smart TVPC USB로 연결되는 외장기기인데, ahaTVguide.com에서 제공한 방송편성표를 클릭하면 알아서 방송물을 PC의 하드디스크에 고화질로 녹화를 해주어 나중에 언제든지 볼 수 있고 DVD로도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때 ahaVideo.com이란 지금의 UCC같은 사이트를 만들어서 개인이 쉽게 영상물을 자신만의 스페이스로 쉽게 업로드시킬 수 있고 영상편지를 보낼 수도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서비스는 결국 Smart TV란 외장기기와 웹서비스를 밀결합시켜, 향후 콘텐츠 및 맞춤형광고 서비스를 하려 한 것입니다. 즉 당시 저희는 SmartTV 구매자가 무슨 영상을 현재 보는지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박찬호 야구를 볼 때 스포츠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려 줄 수 있는 것이지요. 마치 요즘 구글과 네이버의 검색광고처럼요.. 오히려 누가 봤는지를 정확히 알고 과거 히스토리까지 알기 때문에 검색광고보다 더 정교한 맞춤형 광고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만든 제품은 결국 시장에서 인정을 못 받았고, 디바이스가 대중화가 안되니 그에 따른 서비스웹 모델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Smart TV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내면서부터 세상을 제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확장되고 빨라지는 네트워크기반의 연결성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에 더 이상 ㈜디비코에서 다시 디바이스만 만드는 것은 저에겐 더 이상 열정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당시 옥션과 이베이를 보면서 물건이 네크워크 상에서 거래가 되는 것처럼, 언젠가는 정보가 아닌(정보는 검색하면 나오므로) 열심히 산 사람들의 관점/노하우/경험 (이것을 이제부터 지식이라 칭함)이 소통되고 거래되는 세상이 올 것이고, 결국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이에 2002년에 제 멘토이자 후원자이셨던 이용한 회장님의 동의를 겨우 얻고, 와이즈파트너㈜란 지식사업을 위한 회사를 혼자 만들었습니다.

이때 여러 회사를 만나면서 기존사업과 지식사업과의 융합모델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설령 모델을 이해했더라도 조직의 공감대를 못 이루어 더 이상 진행되지를 않았습니다. 초기 자본이 많지도 않았고 ㈜디비코 때와는 달리 파트너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되다 보니 지식사업도 지지부진이고 현금흐름도 악화되는 등 처음 경험해 본 상황을 겪으며 점점 심신이 피곤해지고 제 인생 처음으로 삶의 무게, 실패 이런 단어가 떠 오르게 되었습니다. 4년 전쯤에 직원들에게는 일보러 나간다 하고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남산산책로를 걸으면서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하였습니다. 한 달의 고민 끝의 결론은 저를 믿고 신뢰를 보내 준 사회지인들과 직원을 위해서도 제 마음대로 사업을 접을 수는 없는 것이며, 지식사업은 아주 마라톤 같은 긴 여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20대 중반에 미국에서 미국말로 “Fucked Up”이 되었는데, 이때 배운 점은 인생이 꼬일 때 한방에 만회하려 말고, 오히려 한 발작 뒤로 물러나 현황을 인정하고 다시 백지에서 시작하여야 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때 20대의 순간이 생각났고, 그래서 일단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다시 한 번 마라톤을 뛰자는 것이었습니다. 2갑 이상 피던 담배와 잘 하지 못하는 술을 끊고, 사회 생활하며 한 번도 안 했던 운동을 매일 하고, 음식도 몸에 좋은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3개월을 지내니, 다시 정신과 기가 맑아지며, 지식사업도 새로운 관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3년 전에 실용적인 지식이 공유되는 것을 시장이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지식의 한 소스인 책의 저자를 모시고 생방송토크쇼 형태로 최대한 진솔하고 구체적인 관점과 노하우를 끄집어내는 지식방송 북포럼(www.Gnaru.com)을 매주 1-2회 시작했습니다. “지식방송이란 용어도 처음 만들었는데, 사실 지상파와 같은 매스미디어가 아닌, 전문분야에 관심 있는 그룹만을 위한 나노미디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지식방송 북포럼을 시작으로 전자신문과 지식방송UTV (http://utv.etnews.co.kr)를 곧이어 만들었고 IT전문가들과 토크쇼형태로 기술을 최대한 현업시청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쉽게 풀어갔습니다. 2009년 초반부터는 하나금융의 IT총괄 회사인 하나아이앤에스와 함께 명동에 지식스튜디오를 만들어서 금융,IT,지식을 융합하는 모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www.hanacube.com

현재까지 300회 이상의 생방송토크쇼 지식방송PD겸 진행을 하면서 점점 확신되는 것은 1년 안에 개인이나 기업에게 이득을 주는 실용적인 지식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고, 이를 위해서는 지식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인은 산업시대에서 인정하는 박사,교수,직책 높은 사람, 매스미디어가 인정한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한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현업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그룹은 자기를 연출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지만, 저 같은 지식PD와 쉽게 접근 가능한 지식의 생태계가 있다면, 그 분야를 가려는 사회의 후배들에게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멘토가 될 것입니다.  

제가 벤처 10년 하면서 배운 점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열정과 실력만 갖고는 부족하고 시장이 인정하는 브랜드(확보된 시장과도 일맥상통)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도 20대 초반에 무명이었지만, 자신이 브랜드가 되어 결국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40대이고 제가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키는 브랜드가 될 수 없지만, 아직 열정과 실력은 변함없으며 이것을 세상이 인정하는 브랜드에 융합시켜, 무언가 하려는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지식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구성요소가 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산업시대에서 지식사회로 가는 급격한 길목에 있으며, 이에 공감하는 네트워크 상의 연결된 사상적 동지들과 연결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아 참 너무 무거운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제 꿈은 가난한 계층에는 모든 것이 무료인 24시간 오픈하고 좋은 음식도 제공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돈 번 것으로 비행기를 사든 1억짜리 자전거를 사더라도 그것은 소비를 하는 것이니 상관없지만, 부가 왕조 시대처럼 세습이 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지식과 관점/경험을 습득하는 기회가 박탈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보며, 당장의 배를 채우는 빵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지식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기회의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 지식방송 북포럼 Sam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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